어떤 음악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처럼 부질없음을 모두 알고 있다. 때와 상황에 따라서 다른 음식을 선호하듯, 음악도 그렇다. 멋있는 책이 ‘내 인생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교수라는 직업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새롭게 등장하는 이론과 방법론으로 무장한 전공 서적만 읽으며 허겁지겁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책은 모두가 그렇겠지만 스스로 글을 읽기 전부터 나에게도 일상이었다. 책의 내용을 감지할 수 있는 알록달록한 표지와 코끝에 다가오는 종이 냄새, 그리고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볼륨감, 이 모든 것이 아득한 어린 시절을 기억나게 한다. 최초로 탐냈던 책은 불행하게도 내 소유가 아니었기에 더 애틋했다. 우리 집 근처에 일본에서 이사 온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갖고 있던 일본 그림책들의 선명한 색깔과 도톰한 종이가 나의 오감을 충분히 현혹시켰다. 나는 그 책들 때문에 그 아이의 심술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와 친구가 되기로 결심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유년기를 보낸 1960년대는 책이라는 존재가 정말 귀한 시절로 어린아이들을 위한 책으로는 1959년 계몽사가 펴낸 50권의 <<세계소년소녀 문학전집>>이 처음이었다. 항상 이야기에 굶주려 있든 나에게 이 전집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지 않고도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게 해주었다. 읽고 또 읽으며 손에서 떼지 못했던 그 책들의 촉감은 아직도 내 손끝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며 더 이상 프랑스어로 공부할 수 없게 된 소년 프란츠의 마음을 비밀 얘기는 언제나 일본어로 나누던 부모님을 보며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고아로 태어났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소녀를 그린 스위스의 여류작가 요한나 슈피리의 동화 <알프스의 하이디>는 소극적이며 내성적이었던 내가 마냥 부러워했던 이미지였다. 특히 전쟁고아인 같은 반 친구 몇 명의 이야기 같아 해피엔딩에 도달하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마음 졸이고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전집에 수록되어 있던 많은 이야기들 중 가장 내 마음을 빼앗은 이야기는 영국의 작가 위다가 쓴 <플란더스의 개>였다.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와 함께 좋아했던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보며 죽어간 주인공 소년 네로와 그의 개 파트라슈의 슬픈 이야기는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화가가 되고 싶은 네로의 꿈이 위대한 화가의 그림아래서 죽음을 맞으며 좌절되기에 더욱 처연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에게 충성하는 개의 모습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동행이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려졌다. 기독교를 수용했지만 여전히 유교적인 가르침이 스며 있어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억압된 감정을 정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음악사 수업에서 루벤스의 그림을 오페라와 같은 극적인 바로크 음악 양식의 탄생을 설명하는 시각 자료로 사용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의 주인공이 내가 선호하는 음악 양식에 영향을 미친 화풍의 작가였다니? 이 책을 읽던 그 당시 나는 루벤스가 누구였는지 알지 못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몰랐다. 다만 식민과 전쟁의 경험이 문화의 배경으로 깔려 있던 그 시절 이 이야기는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성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아온 이들이라면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어릴 때 읽었던 추억의 동화를 다시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